편작과 생색

일상/생각 / / 2022. 12. 21. 10:23
제 맏형은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또한 둘째 형은 병이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하므로 그대로 두었으면 목숨을 앗아갈 큰 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 탓에 제 형님들은 가벼운 병이나 고치는 시시한 의사로 평가받아 그 이름이 고을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저는 이미 병이 크게 될 때까지는 알지 못해 중병을 앓는 환자들을 법석을 떨며 치료하니 제 명성만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편작의 일화를 곁들여 하고자 하는 얘기는, 병의 예방 같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나는 생색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어차피 결국은, 내가 중요한 것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편작의 일화와 같이 결국 역사에 있어서도 편작만이 (지금처럼) 회자될 뿐, 편작의 두 형은 심지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역사까지 갈필요도 없거니와 동시대에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 인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편작의 형과 같이 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공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남들이 알아봐주지 않을 때는 자기가 나서서 다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필요하다면 생색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행할 때 적기가 아니라 생각되면 더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무엇이든지 그것이 돋보이게 되는 때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너무 앞서거나 너무 늦으면 빛을 못 본다.
이는 결국 자신의 성과, 성취가 될 것이며 자신의 능력의 잦대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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